16. 콩그레스니 광장 (별 광장이라고도 한다)

콩그레스니 광장에서 열린 공연 / Slovenian Tourist Board

중세부터 있었던 카푸친 수도원이 없어지고 1821년 그 터에 세워진 공원이다. 

류블랴나 의회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던 장소라 콩그레스니 광장(의회광장) 이름이 붙었다. 중앙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공원 길 때문에 별 공원(Park Zvezda)이라 불리기도 한다. 공산 정권 하에 있을 때는 혁명 광장(Trg revolucije)으로, 몇 년 후에는 해방광장(Trg osvoboditve)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1990년부터 원래 이름인 의회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광장은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데, AD 14~15세기부터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에 의해 에모나 성벽의 중앙 광장 이었으며, 1918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선언 곳이며, 1945년 5월 9일 나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993년 교황 바오로 2세가 독립국가 슬로베니아를 이곳에서 인정해 주었다. 1999년 빌 클린톤 미국 대통령이 이곳에서 연설 하기도 했다.

 

큰행사가 있을 경우 이곳에서 많이 진행하고 여름밤엔 여러 야외 공연을,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 류블랴나 시민들이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뒷편으로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17. 류블랴나 대학 본부 건물

건물이 대학 본부 건물

콩그레스니 광장 남쪽 끝에 위치한 류블랴나 대학은 원래 1918년까지 크라인 공국의 의회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1919년부터 류블랴나 대학 본부 건물로 바뀌었다.
1895년 류블랴나 대지진 후 1896년~1902년에 게르만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 건축 되어졌으며, 유럽에서 3번째로 재적생을 가진 대학이다. 건물 외부의 문장과 바로크 양식의 문들은 크라인 공국 시기의 14개 도시와 문장을 의미한다.

얼핏보면 파리 시청사 미니어쳐 같은 느낌도 든다. 깔끔하고 고급져 보인다^^.

 

유럽 대학이 그렇듯이 대학 캠퍼스가 없고 류블랴나 곳곳에 대학 건물들이 퍼져있다. 너무나 뿌듯하게 인문대학 아시아 학과에 한국학과가 있다.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한국학과를 선택하는 슬로베니아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인 2분의 교수님이 있다.

 

18. 삼위일체 성당

의회 광장 건너편에 6개의 도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건축 되어진 건물이 류블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 삼위일체 성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그마한 우에줄리엔 수도원이 있었는데, 부유한 상인과 그의 부인에 의해서 삼위일체 성당으로 개조되어진다. 삼위일체 성당은 1718-26 년 건축가 카를로 마르틴누찌에 의해 지어졌다. 성당은 전체적으로 로마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성당을 모델로 건축되었으며, 류블랴나에서 가장 특이한 바로크 기념물 중 하나이다.
제단은 서로 다른 색깔의 아프리카 대리석으로 조각가 프란체스코 롭바에 의해 1730 ~ 1740 사이에 만들어졌다. 성당의 오래된 종탑은 1895년 대지진으로 부서져 철거 되었고, 새롭게 세워졌다. 성당 입구 앞에 난간과 계단은 슬로베니아 출신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에 의해서 1931~1931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대부분 문이 잠겨있지만 운이 좋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화려한 내부를 감상 할 수 있다.

 

19.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건물

콩그레스니 광장에서 바라본 필하모니 건물과 류블랴나 성

슬로베니아 필하모닉은 매우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하모닉 중 하나이다.
슬로베니아 최초의 뮤지컬 협회에 의해서 1701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설립되었다. 슬로베니아 필하모닉은 1794년 이후에 프란츠 슈베르트, 요셉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등이 협연하였으며, 현재까지 명예 회원으로 등록되어있다. 1881~1882년까지 구스타프 말러가 이곳에서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763년 프란츠 요셉 2세의 방문 시기에 단지 극장 정도의 크기로 건축 되었다가, 1887년에 화재로 인해 파괴 된 후 1891년 그라츠 건축가 아돌프 바그너에 의해 설계되어 건축 되었다.

건물 정면과 둥근 모서리는 그 당시 유행하였던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며 건물의 후면과 파사드는 1937년 요제 플레츠니크에 의해 확장되었다. 2001년에 전체적으로 리모델링 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칼를로스 클라이버, 리카르도 무티 그리고 주빈 메타 등의 거장들이 협연하었으며, 2015년 이 후 부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로스 라요비치 엘라트(Uros Lajovic Eleit)가 지휘자를 맡고 있다.

 

20. 국립도서관 

아르누보양식은 1890~1905년 사이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과 무생물을 건축과 예술에 도입해서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로 승화 시키자는 예술 운동이다.

회화 부분에서는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고, 건축가로는 오토 바그너가 있다. 오토 바그너의 수제자가 류블랴나 출신인 요제 플레츠니크이다.

 

요제 플레츠니크 (1872-1957) 

1895년 지진으로 류블랴나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그 후 이 도시를 재건한 중요 인물이 이 도시 출신의 '요제 프레츠니크'다. 빈(Wien) 아르누보의 대가 오토바그너의 수석 제자였던 그는 대지진 이후 도시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만들었고, 그의 재능을 인정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은 프라하성을 리노베이션해 줄 것을 요청하여, 프라하와 류블랴나에서 동시에 작업을 수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류블랴나에서는 자신의 집을 비롯, 여러 광장과 공원, 대학교, 다리, 성당 등 거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특히 중심 광장 격인 프레셰렌 광장의 삼중다리는 류블랴나의 상징이 됐다.

 

이 국립도서관 건물은 1941년 지어졌다. 책 모양 창문에 회색 벽돌로 덮은 외관으로 플레츠니크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1. 슬로베니아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Bežigrad Stadium, Ljubljana, (1923–1939)

Church of St. Francis of Assisi, Šiška, Ljubljana, (1925–1927)

Chamber of commerce, work and industry, Ljubljana, (1925–1927)

Church of the Archangel Michael on the Marsh (Sveti Mihael na Barju), Črna vas near Ljubljana, (1925–1939)

The Vzajemna zavarovalnica insurance company building, Ljubljana, (1928–1939)

"Tromostovje" or the Triple bridge, Ljubljana, (1929–1932)

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Ljubljana, (1930–1941)

Cobblers' Bridge, Ljubljana, (1931–1932)

"Peglezen", the "Flatiron" house, Ljubljana, (1932–1934)

Žale Cemetery, Ljubljana, (1937–1940)

The Fish Market, Ljubljana, (1939–1942)

The Ursuline gymnasium, Ljubljana, (1939–1940)

Slovene National Parliament, (Katedrala svobode) Ljubljana, (1947)

Križanke, Ljubljana, (1952–1956)

Church of the Visitation in Ponikve, Tolmin(1952–1958)

The Bank of Celje building, Celje, (1927–1930)

 

2. 비엔나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Langer House, Vienna, (1900–1901)

Zacherlhaus, Vienna, (1903–1905)

St. Charles Borromeo Fountain (Karl-Borromäus-Brunnen), Vienna (1906-1909)

Church of the Holy Spirit, Vienna, 1908–1913)

 

3. 프라하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Prague Castle (various projects). Prague, (1920–1934)

Prague Castle (Garden of Eden and first court), Prague, (1920–1926)

Church of the Most Sacred Heart of Our Lord, Prague (1928–1932)

 

4. 베오그라드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Roman Catholic Church of St. Anthony of Padua (Crkva svetog Antuna/Antona) with a somewhat leaning tower at Red Cross, Belgrade (1928–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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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블랴나 구도시는 매번 볼 때마다 질리지 않고 볼수록 참 예쁘다.
남편은 수백번은 봐왔겠지만 갈 때마다 수십장씩 사진을 찍어 댄다.

 

파리나 비엔나 같은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아담아담하지만

고급스러운 유럽풍이며,

골목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옛날 건물들이 정말 아름답다.

난 정말 이 도시를 사랑한다. 

류블랴니차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그 강변을 따라 지나간다.

몇년 전부터 구도시내에는 일반 차량이 다닐 수 없어 훨씬 더 도시가 평화롭게 느껴진다.

 

류블랴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Best 20 을 뽑아볼까? 보통은 Best 10인데 소개시켜 주고 싶은 곳이 너무 많다. 그나마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쳐서 엄선한 20곳이다...

모두 도보로 관광이 가능하다.

 

1. 류블랴나 성 Ljubljana Castle

 

류블랴나 성 안뜰 / Slovenia Tourist Board

 

류블랴나 성에 대한 설명은 저번 글에 올렸으니 참고^^
이렇게 내부 뜰에 바 Bar 와 레스토랑이 있다. 이곳 사람들처럼 햇빛 좋은 날 성 안뜰에서 커피 마시면서 느끼는 여유를 추천한다.  

 

2. 시청사 City Hall

 

 

프레셰렌 광장에서 트리플 브릿지를 건너 오면 오른쪽에 시계탑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지붕 위에 바로크양식 육각형 시계탑이 있으며 1484년 재판소로 지어졌다가 1718년 그레고르 마체트가 재건축하여 시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안뜰로 들어가면 헤라클레스 상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짐승을 잡고 있는 조각을 볼 수 있으며 1층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3. 프레셰렌 광장과 프레셰렌 동상

 

프레셰렌 동상

프레셰렌 광장은 류블랴나 구도시에서 가장 중심인 곳이다.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이사람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프레셰렌은 슬로베니아가 나은 대표적 낭만파시인이다. 시인의 동상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1889년 초등학생의 머리에서 처음 나왔고, 52명의 슬로베니아 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1905년 9월 10일, 완성된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인의 머리 위에 있는 여인은 바위 위에 앉아 월계수 잎을 들고 있는 뮤즈이다. 이 뮤즈까지의 높이를 합하면 9.6m에 이른다.

석조 받침의 양쪽 측면에 있는 부조는 프레셰렌의 작품을 묘사한 것이다.

프레셰렌의 "축배"라는 시가 1989년 9월 27일에 국가로 제정되었다.

 

4. 율리아의 집

 

 

프레셰렌 동상의 눈이 바라보는 곳을 따라가면 건너편에 노란 건물이 있는데, 건물 벽에 붙어 있는 여인의 부조, 바로 프레셰렌이 평생 짝사랑했던 율리아 프리미체(Julija Primic)이다.

시인이 되기 전, 변호사였던 프레셰렌은 1834년, 부유한 상인의 딸 율리아를 사교모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소심했던 프레셰렌은 그 사랑을 율리아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있다가 1836년, 율리아와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해, 프레셰렌은 안나 옐로브섹라는 여자와 동거를 하며, 아이 셋을 낳는다. 그는 평생 안나를 부양하고 배우자처럼 대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다.

그는 1849년 2월 8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하며 단 한 순간도 율리아를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는 상점과 아파트로 사용하고 있다.

 

5. 성 프란체스코 성당

 

성 프란체스코 성당

프레셰렌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핑크색 성당, 성 프란체스코 수태고지 성당이다.

같은 자리에 있던 오래된 성당을 대체해 1646~1660년에 지어졌다. 바로크 양식의 파사드는 1703~1706년에 증축되었다. 1층은 이오니아식 기둥이고, 2층은 코린트식 기둥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붕 꼭대기에 있는 동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이다.

성당내에서 높은 제단은 프란체코 롭바의 조각이며 그는 베네치아 조각가였지만 류블랴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이 도시에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천장 벽화는 19세기 중반 Matevz Langus에 의해 그려졌다.

1895년 대지진으로 피해가 컸으나 다시 복원했다.

 

미사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 내부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 : 무료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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