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봄이 오려나... 오늘은 17도 까지 올라가면서 햇살이 좋다.

 

아직까지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슬로베니아의 숨은 보석을 하나 소개 하려고 한다.
아는 사람 끼리 만 몰래 소문내서 다니는 곳이다. 
벨리카 플라니나 Velika Planina

승용차로 류블랴나에서 한시간 정도 걸린다. 슬로베니아는 워낙 아담 사이즈이고 류블랴나는 나라 한가운데에 있어서 류블랴나에서 출발하면 보통 한두시간이면 도착한다.

슬로베니아 가축들 알프스 여름 별장 ^^

이곳은 목동들이 가축을 데리고 알프스로 올라가 여름을 나던 곳이다. 가축들 일종의 피서지?

가축들이 신선한 풀을 뜯어 먹으며 알프스의 이런 오두막에서 몇 달 동안 시원하게 여름을 지냈다. 
1차 케이블카를 타고, 2차로 2인용 스키 리프트로 해발 1600M 에 올라간다

리프트를 타면 거의 다 올라가서 종점 전에 내릴 수 있는데, 여기서 내리면 유일한 식당(Restaurant Zeleni rob)

이 가깝다. 음식맛은 그닥...^^

단지 우리 입맛에 안 맞을 뿐일 것 같다. 알프스에서 목동들이 먹었던 메뉴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고 이 아름다운 마을을 한바퀴 산책하면 너무 좋다~~

저멀리 2000미터 이상의 알프스 봉우리들의 펼쳐진다.
봄에는 알프스 초원에 핀 수많은 야생화를 보며 산책하고,
여름에는 진한 초록빛 알프스 초원에서 산책하고,
가을에는 알프스 단풍 놀이 산책을 하고,
겨울에는 하얗게 눈 덮인 알프스의 장관을 본다.

벨리카 플라니나의 겨울 / Slovenia Tourist Board

벨리카 플라니나 Velika Planina
케이블카+리프트 왕복 성인 19유로 / 아동 15유로

자가용일때 파킹 장소 : Kamniška Bistrica 2, Stahovica, Slove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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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창하진 않지만 기온은 7도로 따뜻해졌습니다. 저녁 먹고 남편이랑 코코 데리고 산책하고 와야겠습니다.

 

블레드 사진 이쁘다고 얘기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실제로 오셔서 보시면 정말 환상입니다. 오늘은 블레드 호수에 떠 있는 마리아 섬으로 들어갑니다.~~

블레드 섬 / Slovenia Tourist Board

블레드 섬은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이다.^^
교회 하나 달랑 있고 한 바퀴 도는데 20분 정도 걸리는 아주 작은 섬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슬로베니아 섬.

섬이 많은 나라에 사는 나는 좀 이해가 안갔다. 아니, 바다도 있는 나라가 왜 섬이 없어???
없다 ㅠㅠ

 

블레드 섬은 뱃사공이 노를 젓는 전통 나룻배 ‘플레트나’를 타고 섬으로 들어간다. 이 배는 1590년부터 만들어 지금까지 이용되고 있다. 이 플레트나의 뱃사공은 오직 남자만이 가능하다. 18세기 합스부르크 가문이 블레드 호수의 자연 환경보호를 고려하여 딱 22척의 배만 허용했다고 하는데 300년이 지난 지금도 22대 만 운행한다.

플레트나 보트, 우리 단골 야네스 아저씨네 ^^ / Slovnian Tourist Board

섬 안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배에서 내려 이 교회로 가기 위해선 1690년에 만들어진 9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 교회에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신랑은 신부를 안고 99개의 계단을 올라가 교회 안에 있는 종의 줄을 당겨, 세 번 종이 울리면 행복하게 잘 산다고 한다. 이 곳 젊은 청춘들에게는 이곳에서의 결혼식이 로망이다.
저번에 잡지에서 봤는데 슬로베니아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중 하나가 '이곳에서의 결혼식'이 있었다.
제목이 ㅋㅋ... '당신이 거기서 결혼을 한다면 죽을 수도 있다'. 남자들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

보기보다 계단이 많다,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 ^^ / 아래 사진은 Dream Wedding Slovenia

1465년 류블랴나의 주교 의해 고딕양식으로 개축하면서 제단과 54미터의 종탑이 완성되었다. 1509년 대지진으로 교회가 무너졌으나, 1534년에 성모 마리아 성당에 소원의 종을 설치했다. 이 성당 안의 “종소리를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면서 종을 울리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전설은 늘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둔다 ^^ 두가지 가능성을 보자.

 

I. 소원의 종에 관한 전설

사랑하는 남편이 살해되자 슬픔에 잠긴 어느 여인이 남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종을 달기를 소원했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결국 수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로마 교황청이 가엾은 여인을 위해 종을 기증했다고 하는데, 성당 내부에는 지금도 이렇게 종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여기 달린 긴 줄을 당기며 힘껏 종을 세 번 울리고 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이곳에서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곳으로도 유명해졌다.

 

II. 소원의 종에 관한 전설

이곳에도 변사또 같은 영주가 있었다. 농민을 쥐어 짜서 세금을 걷어 들이자 이에 화가 난 농부가 그 영주를 납치 살해 했고 그 부인이 영주 자리를 이어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보다 더 포악했다.
남편의 실종을 애도 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에 종을 달기로 했다. 종을 만들어 블레드 호수를 건너던 중 갑자기 날씨가 악천후로 변해 배가 뒤집히고 그녀가 만든 종은 호수 바닥에 가라 앉았다고 한다. 그 이후 갑자기 그녀는 회개를 하고 로마의 수녀원으로 가게 된다. 교황이 그녀의 슬픈 얘기를 듣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 이 성당에 설치해 주었다고 한다.
해가 저물면 블레드 성 아래 절벽 바위에 그녀(플록세나)의 얼굴을 비춰 블레드 섬의 전설을 되살리고 있다. 금발의 젊은 여인의 모습에서부터 나이가 든 노파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화려한 제단 앞 줄이 소원의 종을 지는 줄이다 / Bled Tourist Board

전에는 소원의 종을 치려면 저 줄에 내가 대롱대롱 매달려야 겨우 칠 수 있었다.

하지만 관광객이 엄청 많아진 지금은 한 손으로도 가볍게 종을 칠 수 있다. 저 종을 치려고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빨리빨리 치고 빠질 수 있게 융통성을 발휘한 것 같다. ^^

 

플래트나 보트
블레드 호수 주변 몇 군데서 탑승 할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1인당 15유로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
Open 08:00~17:00 (여름엔 좀더 늦게까지 한다)

내부 입장은 6유로 (성당 내부와 종탑에 올라갈 수 있다)

 

다음엔 알프스 산에 있는 목동 마을을 가봐야겠다. 내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아무리 많이 가도 질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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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드 성과 마리아 섬의 투샷 - 내가 봐도 가장 아름다운 호수다.... / Bled Tourist Board

오늘 오전 내내 류블랴나에 눈이 오고 춥고 어두컴컴하고...

내 마음도 날씨 같다... 지난 주 날씨가 좋았을 때는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속 없이 좋아ㅠㅠ 했는데...

날씨라도 좋아야지 요즘 멘탈로 이런 날씨는 엄청 우울하게 만든다...

저 당황하고 있는 빨간 목련 어떡하지??? 목련 맞나?^^

오늘은 어제 이어 블레드 성으로 가보자.

블레드 호수는 율리안 알프스 산맥의 빙하 호수로 해발 475m의 고원 지대에 있다. 호수의 최대 길이는 2,120m, 최대 넓이는 1,380m이며 최대 깊이는 30.6m. 호수 둘레는 8km. 호수 주위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2시간 정도면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수가 있다.
이곳 블레드에서는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가 4번이나 열렸었다. 지금까지 세계 조정 선수권 대회가 4번 열린 곳은 스위스의 루체른과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밖에 없다. 여기 사람들 엄청 우쭐^^

 

블레드 성 / Bled Tourist Board

블레드라는 의미는 “바위 위에 세워진 성체"라는 뜻이다.
슬로베니아 성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며, 블레드 성도 류블랴나성 만큼이나 주인이 많이도 바뀌었다.
격동의 1차 대전 후인 1918년에 호텔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팔려 호텔로 운영될 위기에 놓였었지만 다행히^^ 그 사람이 파산을 해, 은행으로 압류 된다.
1918년 블레드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이 되면서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1947년 8월 18일 블래드 성은 커다란 화재로 인해서 성의 60%가 파괴된다. 그 후 블레드 성체의 전체적인 복원은 1952년에 시작, 1961년에 완성되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눈 덮인 알스프가 병풍 같다 /  Bled Tourist Board

블레드 성 구조는 상부와 하부 정원을 가진 두 공간의 구조다.
매표소를 지나서 계단을 올라가면 먼저 하부 정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구텐베르크 인쇄기를 가지고 1560년부터 문서와 종교적인 편찬을 했던 인쇄소가 있다. 요즘에는 여행자들에게 블레드 성 방문 증명서를 고고학 독일어로 발급해 준다. 8유료다. ^^

정원 중앙에 1541년에 만들어진 우물이 있고 그 당시는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 하였다. 우물의 깊이는 20미터.
우물을 지나면 테라스가 있는데, 이곳에서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블레드 시가지가 내려다 보인다. 반대편으로는 알프스에 있는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테라스 끝 쪽에 있는 둥근 망루는 1659년에 만들어진 것이고, 중간에 있는 4각형 망루는 1711년에 건축 된 것이다. 블레드 성 안에는 옛 베네틱트 수도원 자리에 와인을 판매하는 장소가 있는데 꽤 고급스러운 와인을 살 수 있다. 성체 안 전 지역에서는 와이파이가 연결된다.

 

블레드 성 내부의 성당 / Bled Tourist Board

계단으로 블레드 성 상부로 올라가면 건물 왼쪽이 소성당(castle chapel), 오른쪽이 박물관이다.
이 성당은 성 알부인과 성 인게우인의 두 성인을 위한 봉헌 장소이다. 예배당 안에는 의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1895년 대지진에 의해서 부서졌지만, 부분적으로 16세기의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제단화 뒷벽에는 십자가 대신 예수님의 두상을 프레스코화의 벽화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교관으로 쓰였던 건물은 지금 박물관으로 꾸며져 유적들을 전시하고 있다. 

옛 주교관이었던 채플로 이동하다 보면 중세 기사의 복장과 무기들, 블레드 성의 건축 역사 그리고, 주교의 목욕탕과 성체 도구들을 볼 수 있다.

 

쉿!!! 여기서 아주 소수만 아는 비밀이 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방 오른쪽 벽면에 주교의 화장실이 있는데, 이 화장실에 앉으면 절대로 치질이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자세를 취하면 화장실에 뚫린 창으로 호수 전경이 너무 멋있게 보인다. 전경을 감상하시는 척 하면서 영험한 치료를 경험 하시길...

블레드 성 야경 / Bled Tourist Board

블레드 성 Opening Time

1,2,3,11,12월 8:00~18:00
4,5,6,9,10월 8:00~20:00
7,8월 08:00~21:00
블레드 성 Ticket

성인 13유로 / 청소년 7.5유로 / 아동 4.5유로

 

내일은 플래트나 보트를 타고 저 섬 안으로 가보자~

이젠 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무기력이란 애가 슬금슬금 올라오려고 하던 찰나 은사님이 전화 주셨다.

음... 역시 선생님한테는 일장 연설을 들어야 맛이다.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지금,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등등... 
직업병은 못 고친다.^^

이 순간에도 너무나 열심히 살고 계신 선생님한테 자극 받아 정신 줄 꽉 잡고 심기일전 하기로 했다.

어렸을 때도, 나이든 지금도 선생님한테는 맨날 혼난다...

 

여긴 오늘 꽃샘 추위라 하기엔 좀 심한 날씨다. 아침부터 눈발이 장난 아니다. 오후가 되어서야 그쳤다. 산간 지방에는 10~15cm 눈이 왔다고 한다. 한겨울이다, 꼼짝하기 싫다. 

'이런 날은 딱 쿠하노비노인데...'
남편이 창고를 뒤적거리더니 오랜만에 보는 그 아이를 한 병 가지고 나왔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쿠하노비노를 숨겨 놨던 모양이다. 추울 땐 아침부터 얘를 마셔줘야지, ㅎㅎ 암요.^^ 

 

슬로베니아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528명, 사망자가 5명이다.

유럽은 아직 그 바이러스놈이 활개를 치고 있다.

갑자기 파란색이 보고 싶어 졌다. 사진으로라도 봐야지. 블레드로 간다...

 

플래트나 보트를 타서 찍은 마리아 섬, 절벽 위 블레드 성 그리고 알프스

8천명이 살고 있는 블래드가 유럽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55년 스위스에서 온 의사가 이곳에 요양소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그리고 온화한 햇볕은 환자 치료에 효과가 좋았을 것 같다.

 

유고슬라비아 왕족들이 블레드 지역에 별장을 두었던 것처럼, 티토 역시 이곳에 있던 건물을 개조해서 1947년부터 별장으로 사용했다. 지금의 빌라 블레드 호텔이다.
티토는 블래드의 여름 별장을 휴식이나 친교의 장소로 활용했다. 중요한 손님이 유고슬라비아를 방문하면 이곳에서 영접했 했다고 한다. 후세인 요르단 왕, 인디라 간디, 일본의 아키히토, 티토의 막역한 친구인 차우체스크가 이곳을 다녀갔다.

특히 빌리브란트 독일 총리는 '동방 정책'의 집필을 이곳에서 마무리 하는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또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김일성 아저씨. 티토를 닮으려고 노력 했던 김일성은 유고슬라비아 방문 일정을 10일이나 더 연기하면서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블레드 호수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무언가가 있다.

김일성과 티토는 살아온 과정도 그렇고 비동맹 노선을 같이 하는 등, 철학도 닮은 데가 많다. 그래서 두 사람은 평양과 베오그라드(유고시절 수도)를 오가며 빈번하게 만났다. 김일성은 보안상의 이유로 해외 순방길에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베오그라드까지 시베리아철로를 이용했다.

 

아래의 사진들은 티토의 별장 별관 건물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지금은 카페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에서 블레드 크림케익과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인생샷을 찍어 보자.

Café Belvedere - 4월 말에서 9월 말까지만 오픈 한다. 호수 산책로를 따라 가다가 카페 표지판을 보고 계단을 따라 윗쪽으로 올라 가면 된다. 또는 빌라 블레드를 통해서도 갈 수 있다.

기술 없이 찍어도 보통 이정도로 나온다. ^^

다음 편에는 블레드 성에 올라가봐야겠다.

류블랴나 사람들이 많이 찾는 메뉴 중 하나는 역시 피자다. 이젠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메뉴,,, 피자.

시간상 금액상 간단하게 먹기 좋은 것 같다.

한국에서 피자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유럽 피자가 맛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왜냐면 유럽 사람들은 그리 한국처럼 화려하게 토핑을 하지 않는다. 섞이지 않은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긴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인지 여기 피자 값은 비싸지도 않다. 6~10유로 정도.(한국돈 8천원~13000원 정도)

남편이 즐겨 먹는 피자는 '마르게리따' 이다. 그냥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소스만 토핑 한 가장 기본적인 피자.

돈 아끼려고 매번 그것만 먹는 걸까???
내가 먹어봐도 화려한 토핑보다는 담백하고 맛있다. ^^

 

오늘은 류블랴나에 있는 피자 집 중 우리가 가장 맛있다고 선별한 두 곳을 추천하려고 한다.
이 두곳 음식 메뉴는 샐러드와 피자만 있다. 난 이런 식당이 좋다, 전문적으로 한놈만 파는...

 

1. 파르마 Pizzeria Parma

유고슬라비아 시절 1호 피자집이다. 벽에 걸린 사진들을 보면, 내부가 그때랑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그 시절에 완전 혁신적인 매장 이었을 듯... 벽에 걸린 유고 시절의 오래된 인테리어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 집 피자 사이즈는 한 사람이 먹기 딱 좋은 사이즈이고, 유럽 도우는 대부분 '씬'인데 비해 여기 도우는 좀 두꺼운 편이다. 그런데 이 도우가 찹쌀처럼 쫀득쫀득 하다. 어떻게 유고시절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알 것 같다.

류블랴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피자 집이다. 

프레셰렌 광장에서 700미터 거리에 있다.

프레셰렌 광장에서 강변을 따라 걸어 오다가 콩그레스 광장을 지나 큰길로 나와서 쿠보 호텔을 끼고 조금 더 걸어감

건물 지하로 계단을 내려오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왼편과 오른편에 있다. 가급적이면 주방이 있는 오른편 매장에 자리 잡으시길... 건너편에 확장을 했는데 바쁠 땐 직원이 잘 안온다.^^

월~금 10:00~20:00 토 10:00~16:00 일 Close

2. 포쿨루스 Foculus

매장이 엄청 크고 캐주얼한 분위기이다. 날씨 좋을 땐 외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먹는 것도 재미있다. 메뉴가 엄청 다양하고 류블랴나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도우가 얇고 토핑 종류가 많다. 직원이 센스있게 외국인에게는 영어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프레셰렌 광장에서 700미터 거리에 있다.

프레셰렌 광장에서 강변을 따라 분수가 있는 노비 트르그까지 와서 오른쪽길로 가면서 두번 길을 건너면 간판이 보인다.

남편과 둘이 가면 샐러드 하나와 미듐사이즈 한판 시켜서 먹으면 딱 좋다. 거기에 슬로베니아 맥주 라스코나 유니온을 곁들이면 날씨 좋은 날 한끼 식사로 딱이다.

월~금 11:00~23:30 주문까지 토,일,공휴일 Close

다음편에도 우리가 선정한 류블랴나 맛집이 계속~~

우리가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슬로베니아 강아지들은 다 대형견이었다.
코코가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너무 귀엽다며 미친다. 맨날 큰 개들만 보다가 그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 앙증맞은 개를 보니 귀여워 보였겠지. 참고로 코코는 정말 토이푸들인지 의심스러운 6kg 의 아이로 한국에 있을 때는 그냥 지나가는 개중의 한마리 정도다. 그래도 어미 눈에는 콧날 각도가 장난 아닌게 정말 자~알 생겼다.^^

 

하루는 레스토랑 노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을 잠깐 다녀온 사이 남편과 코코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겹겹이 모여있는 사이에 코코 짖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하고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보니, 이태리 관광 그룹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코코가 예뻐 죽는다며 같이 사진 찍어도 되냐구... ㅋ 돌아가며 코코 사진을 찍는 중 이었다.

이태리 사람들의 과한 리액션 속에서 울 코코는 저리 가라고 막 짖어 대고... 

참나... 여기 오니까 울 코코가 먹히는 구나...

 

이런 경험은 두번째다. 

예전에 남편과 이란 자유 여행을 갔었는데 - 10년 전 쯤? 참고로 이란은 정말 볼거리가 최고다. 책에서만 봤던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의 전설 같은 모습을 내 눈으로 볼 수 있다. 이슬람 사원은 정말,,, 나중에 그때 찍은 사진 꼭 방출해야지...

우리가 관광했던 이란 도시 중 하나인 야즈드에서 관광지를 둘러보는 중에 이란 중학생 정도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선생님을 따라 다니며 흘끔흘끔 우리를 쳐다 봤다. 우리가 동양인이라 신기해서 그러나 보다 하고 그냥 웃어주면서 지나치곤 했는데...

뒤에 오던 남편이 없다... 한참 뒤돌아가서 봤더니 수학여행 온 이란 아이들 사이에 파묻혀 있다. 한참 후에 아이들을 벗어난 남편이 하는 말이... '애들이 사인 해 달래서 백 장 정도 해줬어' 응? 뭔 소리?

얘기를 들어 보니 그때 이란에서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주몽 이란다.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 보더니 남편보고 주인공 송일국 닮았다고 사진 찍고 사인 받아가고...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누가? 어디가? 뭐가? 

남편은 절대 송일국과 손톱 만치도 닮지 않았다. 내가 한혜진이랑 닮았다고 하면 몰라도 ㅋㅋ - 하긴 나도 바늘구멍 만큼도 닮지 않았다. 

그 멀고 먼 나라에서 한국 드라마가 이 정도 인기라니... 그 후로도 우린 이란에서 주몽 얘기를 들으며 연예인 놀이를 잠시 했다. ㅎㅎㅎ

 

암튼,,, 슬로베니아는 개 천국 이다. 공원에서는 목줄 없이 개들이 뛰어 다니고, 레스토랑이나 바에 가서 '우리 강아지 있는데 들어가도 될까?' 물어보면 답은 하나다. 'Why not?' (얼른 들어와)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사람 밥 보다 개가 마실 물을 더 먼저 가져다 준다. 여기서는 코코를 데리고 못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다. 관공서나 은행 정도?

 

개를 입양한 친구가 있었다. 개를 키우던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친구 남편(슬로베니아 사람)이 데리러 갔는데 전화로 '생각보다 너무 작다, 앙증맞다...' 이러더란다. 업무 끝나자 마자 달려갔더니 25 킬로가 넘는 앙증맞은 대형견이었다. 뭐 여기서 25킬로 쯤이야 대형견에서 살짝 빠지긴 하지... 매번 수제 간식 해 먹이며 애지중지 잘 키웠다.


친구가 두번째로 입양한 아이는 보스니아에서 홍수 때문에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아이였다. 뭔 유기견을 보스니아에서 데려오나 했는데 여기는 유기견이 없다. 정말 없는지 한동안 인터넷 서칭을 해봤는데 정말 유기견 보호소 같은 곳이 없다. 여기는 버려지는 개가 없다는 뜻이다. 와... 리스펙!!!

친구는 보스니아에서 그 아이를 데려오며 기부금도 내고 서류 처리비 등 적지 않은 비용을 내며 데려와서 우리 코코 보다도 더 애지중지 잘 키운다.

 

여기 강아지들은 어렸을 때 훈련을 필수적으로 받는 것 같다. 주말에 공원에 나가보면 커다란 강아지들이 주인들과 같이 빙 둘러 서서 같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화 교육과 예절 교육을 확실하게 가르치는 것 같다. 내가 봐도 여기 개들은 정말 젠틀하다. 절대 사람한테 짖지 않고 강아지 사이에서도 예의가 있다. 길거리에 다닐 때도 줄을 매지 않은 대형견들을 자주 본다. 어찌나 주인 옆에서 보폭 맞춰가며 쫄랑쫄랑 잘 걷는지... 사람들이 예뻐하면 그것을 즐긴다. 식당이나 바에 가면 테이블 아래 엎드려서 주인이 끝날 때 까지 조용히 기다려 준다.
이런 기본들이 되어 있으니 개에게 자유가 허락되는 거겠지.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1. 마트나 관공서 등 건물 앞에 강아지 묶어 놓고 편하게 볼일 보는 개 주인. 

2. 자기 목줄 자기가 물고 산책하는 개의 주인.

 

몇 년 사이에 여기도 소형견들이 많아졌다. 내가 봐도 코코보다 작은 너무 귀여운 앙증맞은 강아지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 코코보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말한다. 문제는 작은 개들이 일으킨다고... 맞다 ㅋㅋ. 여기서도 다니다가 짖거나 말 안 듣는 애들은 다 작은 개들이다.^^

 

우리 코코도 이 곳에서는 공원에서 줄 없이 뛰어논다. 가끔 줄을 메고 다니면 사람들이 강아지 목줄 풀어주라고 한다 ^^. 여기 사람들은 정말 개를 많이,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그만큼 문제를 일으키는 개도 별로 없다. 문제라고 해봤자 개망나니 짓 정도? ^^

 

내가 생각하기에 개들의 문제는 모두가 주인 탓이다. 개는 아무 문제 없다. 

주인의 성숙한 인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있어야 사람들 속에서 개들도 행복할 수 있다.

우리 개도 문제가 있는 아이다. ㅠㅠ
개는 개 답게 키워야 하는데 왜 자꾸 개아들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이 애미, 애비가 널 다 망치고 있다 ㅠㅠ.
오늘부터 다시 개 답게 키우는 훈련을 해야겠다.
코코야... 제발 여기 개들 좀 닮아보자 ㅠㅠ

우리 개 아들

6년 전 슬로베니아에 처음 왔을 때 한식당이 없어서 즐겨 찾던 곳이, 중국 식당과 태국, 일식당 이었다.
예전에 캐나다 출장 갔을 때 록키 산맥 시골 마을에도 중국 식당이 있는 걸 보고 대단하다고 느꼈지만 이곳에서도 역시중국 식당은 이미 여럿 있었다. 규모도 크고 현지인 입맛에 맞춰 슬로베니아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었다.

역시 중국은 상술이 대단한 것 같다. 중국 식당이 있으면 뭐하냐... 난 짜장면과 짬뽕이 먹고 싶다 ㅠㅠ

 

지금은 중국 식당 갯수도 늘어 여기저기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럽은 비자 받기도 쉽지 않아 제3국 사람들이 거주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슬로베니아는... 하지만 이곳도 대부분의 아시아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이다.

그리고 중국 음식은 맵지 않아 현지인들 입맛에 잘 맞는 듯 하다. 고급 중국 식당이 아니면 가볍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도 많다.

 

태국 식당은 류블랴나에 대여섯 군데 되는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원래 태국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가장 자주 찾았던 곳이다. 예전에 우리가 구시가에서 즐겨 찾았던 On Thai(캐주얼 분위기) 와 Chuty's(고급 레스토랑 분위기) 가 있고, 요즘 우리가 찾는 곳은 중앙역 앞 Roza Slon 이다. 툭툭이를 입구에 갖다 놓은게 인상적이고 많이 캐주얼한 식당이라 모임을 갖기엔 적당하지 않지만, 가볍게 먹거나 테이크 아웃을 하기엔 좋다. 우리가 이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음식 맛이 우리가 좋아하는 자극적인 태국 맛이고 무엇보다 금액이 착하다.

 

일식은 류블랴나에 8군데 정도 있고, 관광 책자에 대표적으로 나오는 곳이 구시가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인SUSHIMAMA다. 구시가에 또 다른 한곳은 회전 초밥도 같이 하는 곳인데 Moysushi 다. 간단하게 초밥을 먹기엔 좋다.

류블랴나에서 가장 맛있는 곳은 아무래도 Maru다 구시가에서는 좀 떨어져 있지만 가장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는다. 음식 값이 좀 비싸다는게 흠이지만, 손님을 접대 할 때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마루를 찾는다. 

또 자주 가는 곳이 있는데 Sato Bento다. 친한 언니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거의 단골 손님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이곳에 가면 우리는 코스 요리를 시켜먹는데 7코스를 시키면 두시간 넘게 수다 떨면서 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속 터질뻔 하지만 할 얘기가 많은 사람들이라면 얘기하면서 음식을 즐기기에 좋다. 음식에 비해 금액도 착한 편이다.

구시가에 일본 라면 집도 하나 생겼다.

 

요즘 우리한테 핫한 식당은 작년에 생긴 베트남 식당이다. 쌀국수를 엄청 좋아하는 친구 때문에 자주 가기도 하지만 음식 맛이 좋다. Dobro Jutro Vietnam. 자라 옷 매장 건물 안에 있다.

 

드디어 한국 식당이 2,3년전 부터 생긴 것 같다. 처음으로 생긴 Suwon(수원). 센터에서 버스로 3~4정거장 거리에 있으며 김밥, 만두, 떡볶이, 치킨, 불고기등 메뉴가 다양하다. 전통적인 한식당 보다는 약간 Bistro 느낌이 있다. 우리 단골이다.^^

그리고 구시가에 1년전쯤에 생긴 Ogam(오감). 전과 찌개도 있고 종류가 다양하다. 
한번도 가보진 않았는데 중앙역 근처에 있는 jamjam (얌얌),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김밥과 비빔밥, 제육볶음등이 있는 것 같다.

 

내 입맛이 좀 4,50대 아저씨들 술안주 취향이다. 감자탕, 순대국, 아구찜, 보쌈, 족발, 해물탕, 삼계탕, 갈비찜, 양념게장, 알탕, 육회 등등... 회는 말 할 것도 없다. 이런 걸쭉한 내 입맛을 충족시키기엔 지금의 한식당 메뉴가 부족하다^^

 

한국에 가면 첫 일주일은 회만 먹는다. 입에서 비린내 날정도로...

여기서 일식당 이라고 해봤자 한국처럼 횟집도 아니구, 대부분 몇 점 나오는데 종류가 뻔하다. 맛없는 참치 붉은 살, 연어, 회전 초밥집에서 맨날 나오는 그 익힌 새우. 이 세가지가 필수 종목이고 고급 식당은 여기에 한두 종류 더 나오는데 그냥 밍밍한 회다... 우럭이나 광어, 도다리 같은 그런 찰지고 탱글탱글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아, 침나온다. 그런 회는 절대 없다. 

 

지금은 그래도 없으려니 하고 참지만,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돼 미치도록 회가 먹고 싶어서 살아 있는 생선을 찾아 헤맨적이 있다.

 

한번은 휴가로 피란에 가서 며칠 있는 동안 레스토랑 주인한테 살아 있는 생선 좀 구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기 친구가 오늘 저녁에 낚시하러 가는데 얘기해 놓겠다고 해서, 드디어 우리가 살아있는 생선 회를 먹는구나!!!! 오후 내내 남편이 회를 뜨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레스토랑 주인이 생선이 왔다고 연락이 와서 남편이 빛의 속도로 가지러 갔고, 내 눈앞에 가져다 놓은 아이는 심장에 작살 맞고 이미 '작살난 아이'였다. 그래도 약간 광어 비슷하고 금방 죽었을테니까 싱싱한거야. 빨리 회쳐!!! 

우린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정말 너무 흐믓하게 회를 씹어댔다. 회치느라 힘들었을 남편을 생각해서 맛있는 리액션을 했지만 사실,,, 역시 한국회와는 다른,,, 맛없는 회였다.

 

또 한번은 몬테네그로 해변을 운전하면서 가다가 생선들을 파는 엄청 큰 수협 같은 곳을 발견하고 빛의 속도로 뛰쳐 들어갔다. 생선은 정말 다양하게 많았지만 다 죽은 아이들이었다. 그때!!! 내 눈에 큰 수조에서 열심히 헤엄을 치면서 날 부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세상에!!! 있었어, 있었다구... 살아 있는 애들이... ㅠㅠ

열심히 그 중에서 내 입속에 들어갈 아이를 정말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골랐다. 수조를 돌아가며 아마 30분 정도는 골랐던것 같다. 왜냐면 또 사러오기엔 몬테네그로는 류블랴나에서 너무 멀다...


드디어 점원을 불러 저 아이를 달라고 했다. 

안판단다. 왜?왜? 왜 안파는데!!! 안판다는 말에 머리가 잠깐 돌아서 그 불쌍한 점원에게 막 따지다가 나중에는 제발 한마리만 팔아달라고 사정하고... 

나중에 정신차리고 점원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그 수협 같은 곳 주인이 애지 중지 키우는 아이들이었다. 애견 말고 애어? 이성을 찾으니 내가 얼마나 무식하고 잔인하게 보였을까 싶은게, 너무 창피했다. 우리 코코를 팔라는 거 하고 똑 같은 것이었다. 

 

이젠 어느 정도 포기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나 친한 사람들이 가끔 오면서 한국에서 뭐 사 가지고 갈까 물어보면 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이렇게 말한다.

'회 한접시 ㅠㅠ'

 

정말 이런 회가 먹고 싶다 ㅠㅠ 

16. 콩그레스니 광장 (별 광장이라고도 한다)

콩그레스니 광장에서 열린 공연 / Slovenian Tourist Board

중세부터 있었던 카푸친 수도원이 없어지고 1821년 그 터에 세워진 공원이다. 

류블랴나 의회에서 기념식을 거행하던 장소라 콩그레스니 광장(의회광장) 이름이 붙었다. 중앙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은 공원 길 때문에 별 공원(Park Zvezda)이라 불리기도 한다. 공산 정권 하에 있을 때는 혁명 광장(Trg revolucije)으로, 몇 년 후에는 해방광장(Trg osvoboditve)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1990년부터 원래 이름인 의회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광장은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가 있는데, AD 14~15세기부터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에 의해 에모나 성벽의 중앙 광장 이었으며, 1918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선언 곳이며, 1945년 5월 9일 나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993년 교황 바오로 2세가 독립국가 슬로베니아를 이곳에서 인정해 주었다. 1999년 빌 클린톤 미국 대통령이 이곳에서 연설 하기도 했다.

 

큰행사가 있을 경우 이곳에서 많이 진행하고 여름밤엔 여러 야외 공연을, 겨울엔 스케이트장으로 변하는 류블랴나 시민들이 사랑하는 장소 중 하나이다. 뒷편으로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17. 류블랴나 대학 본부 건물

건물이 대학 본부 건물

콩그레스니 광장 남쪽 끝에 위치한 류블랴나 대학은 원래 1918년까지 크라인 공국의 의회 건물로 사용되었다가 1919년부터 류블랴나 대학 본부 건물로 바뀌었다.
1895년 류블랴나 대지진 후 1896년~1902년에 게르만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 건축 되어졌으며, 유럽에서 3번째로 재적생을 가진 대학이다. 건물 외부의 문장과 바로크 양식의 문들은 크라인 공국 시기의 14개 도시와 문장을 의미한다.

얼핏보면 파리 시청사 미니어쳐 같은 느낌도 든다. 깔끔하고 고급져 보인다^^.

 

유럽 대학이 그렇듯이 대학 캠퍼스가 없고 류블랴나 곳곳에 대학 건물들이 퍼져있다. 너무나 뿌듯하게 인문대학 아시아 학과에 한국학과가 있다.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한국학과를 선택하는 슬로베니아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한국인 2분의 교수님이 있다.

 

18. 삼위일체 성당

의회 광장 건너편에 6개의 도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건축 되어진 건물이 류블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건물, 삼위일체 성당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조그마한 우에줄리엔 수도원이 있었는데, 부유한 상인과 그의 부인에 의해서 삼위일체 성당으로 개조되어진다. 삼위일체 성당은 1718-26 년 건축가 카를로 마르틴누찌에 의해 지어졌다. 성당은 전체적으로 로마의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성당을 모델로 건축되었으며, 류블랴나에서 가장 특이한 바로크 기념물 중 하나이다.
제단은 서로 다른 색깔의 아프리카 대리석으로 조각가 프란체스코 롭바에 의해 1730 ~ 1740 사이에 만들어졌다. 성당의 오래된 종탑은 1895년 대지진으로 부서져 철거 되었고, 새롭게 세워졌다. 성당 입구 앞에 난간과 계단은 슬로베니아 출신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에 의해서 1931~1931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대부분 문이 잠겨있지만 운이 좋아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화려한 내부를 감상 할 수 있다.

 

19.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건물

콩그레스니 광장에서 바라본 필하모니 건물과 류블랴나 성

슬로베니아 필하모닉은 매우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필하모닉 중 하나이다.
슬로베니아 최초의 뮤지컬 협회에 의해서 1701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설립되었다. 슬로베니아 필하모닉은 1794년 이후에 프란츠 슈베르트, 요셉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등이 협연하였으며, 현재까지 명예 회원으로 등록되어있다. 1881~1882년까지 구스타프 말러가 이곳에서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763년 프란츠 요셉 2세의 방문 시기에 단지 극장 정도의 크기로 건축 되었다가, 1887년에 화재로 인해 파괴 된 후 1891년 그라츠 건축가 아돌프 바그너에 의해 설계되어 건축 되었다.

건물 정면과 둥근 모서리는 그 당시 유행하였던 네오 르네상스 양식이며 건물의 후면과 파사드는 1937년 요제 플레츠니크에 의해 확장되었다. 2001년에 전체적으로 리모델링 하였다.

가장 최근에는 칼를로스 클라이버, 리카르도 무티 그리고 주빈 메타 등의 거장들이 협연하었으며, 2015년 이 후 부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로스 라요비치 엘라트(Uros Lajovic Eleit)가 지휘자를 맡고 있다.

 

20. 국립도서관 

아르누보양식은 1890~1905년 사이에 유행했던 건축 양식으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물과 무생물을 건축과 예술에 도입해서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로 승화 시키자는 예술 운동이다.

회화 부분에서는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고, 건축가로는 오토 바그너가 있다. 오토 바그너의 수제자가 류블랴나 출신인 요제 플레츠니크이다.

 

요제 플레츠니크 (1872-1957) 

1895년 지진으로 류블랴나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그 후 이 도시를 재건한 중요 인물이 이 도시 출신의 '요제 프레츠니크'다. 빈(Wien) 아르누보의 대가 오토바그너의 수석 제자였던 그는 대지진 이후 도시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만들었고, 그의 재능을 인정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은 프라하성을 리노베이션해 줄 것을 요청하여, 프라하와 류블랴나에서 동시에 작업을 수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류블랴나에서는 자신의 집을 비롯, 여러 광장과 공원, 대학교, 다리, 성당 등 거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특히 중심 광장 격인 프레셰렌 광장의 삼중다리는 류블랴나의 상징이 됐다.

 

이 국립도서관 건물은 1941년 지어졌다. 책 모양 창문에 회색 벽돌로 덮은 외관으로 플레츠니크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1. 슬로베니아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Bežigrad Stadium, Ljubljana, (1923–1939)

Church of St. Francis of Assisi, Šiška, Ljubljana, (1925–1927)

Chamber of commerce, work and industry, Ljubljana, (1925–1927)

Church of the Archangel Michael on the Marsh (Sveti Mihael na Barju), Črna vas near Ljubljana, (1925–1939)

The Vzajemna zavarovalnica insurance company building, Ljubljana, (1928–1939)

"Tromostovje" or the Triple bridge, Ljubljana, (1929–1932)

National and University Library, Ljubljana, (1930–1941)

Cobblers' Bridge, Ljubljana, (1931–1932)

"Peglezen", the "Flatiron" house, Ljubljana, (1932–1934)

Žale Cemetery, Ljubljana, (1937–1940)

The Fish Market, Ljubljana, (1939–1942)

The Ursuline gymnasium, Ljubljana, (1939–1940)

Slovene National Parliament, (Katedrala svobode) Ljubljana, (1947)

Križanke, Ljubljana, (1952–1956)

Church of the Visitation in Ponikve, Tolmin(1952–1958)

The Bank of Celje building, Celje, (1927–1930)

 

2. 비엔나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Langer House, Vienna, (1900–1901)

Zacherlhaus, Vienna, (1903–1905)

St. Charles Borromeo Fountain (Karl-Borromäus-Brunnen), Vienna (1906-1909)

Church of the Holy Spirit, Vienna, 1908–1913)

 

3. 프라하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Prague Castle (various projects). Prague, (1920–1934)

Prague Castle (Garden of Eden and first court), Prague, (1920–1926)

Church of the Most Sacred Heart of Our Lord, Prague (1928–1932)

 

4. 베오그라드에 소재한 요제 플레츠니크의 건축물

Roman Catholic Church of St. Anthony of Padua (Crkva svetog Antuna/Antona) with a somewhat leaning tower at Red Cross, Belgrade (1928–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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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코로나 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3월 4일에 나왔고 오늘이 딱 2주째다. 

 

그동안 휴교도 하고, 대중교통도 차단 시키고, 꼭 필요한 상점 외에는 모두 문을 닫게 했다.

어제부터 EU밴드로 외국인 입국을 금지시켰다. - 그전까지는 슬로베니아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인 입국자 제한을 두지 않았었다.

현재는 모스크바나 외국에 있는 슬로베니아인들을 전세기로 이용해서 데리고 오는 것을 추진중이다.

 

지난주 수요일에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왔다.

갑자기 금요일 오후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사재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단다.

그리고 또 친한 언니한테 류블랴나가 봉쇄 될 수도 있다는 전화도 받고...

저녁을 준비하다 남편이랑 불안한 마음에 냅다 마트로 달려갔다.

신속함의 대명사는 당근 한국인이지^^

 

내가 이틀 전 고기를 샀던 진열대와 완전 달라져 있다. 텅~~

이게 리얼 장면인지 한동안 멍했다...

이틀만에 다 팔려나간 고기들. 아마 계속 진열장을 채워 놓았을텐데...

곳곳에 텅 빈 진열대들에서 슬로베니아 사람들 주식이 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고기들과 이 사람들이 즐겨 먹는 뇨끼(우리나라 만두 같은?), 계란, 유제품, 시리얼, 빵등 곳곳이 텅텅...

그나마 재빠른 사람들이 확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마트에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요즘 이렇지는 않을 듯 싶다.

이날은 불안감의 극대화였던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더 심했겠지,,,

이런 상황은 정말 나도 처음 보는 당황스러운 장면이다. 뉴스에만 나오는게 아니었구나...

얼마나 다행인가... 그들과 우리의 식문화가 다르니^^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흩어져서 쌀과 배추, 석회석을 없애기 위한 술^^ 등을 사재기 하고 왔다.

 

그날부터 남편은 김치를 두판에 걸쳐 담았고... 한국 사람이야 김치 하나만 있으면 만사 해결이지.

요즘은 남편이 김치 담그는 솜씨가 정말 정말 좋다.

전에는 한국 배추와 여기 배추가 달라서 (줄기 부분이 억세서 잘 저려지지도 않는다) 샐러드같이 싱거운 김치, 젓갈 같은 짠 김치, 막 이랬는데 요즘은 딱 칼국수집 김치다. 정말 맛있다.

한국에서는 주방에서 설거지나 겨우 하던 사람이 여기 와서 뒤늦게 재능을 발견하고 음식 만드는 걸 즐긴다.

사람들을 우리 집에 식사 초대하면 묻는다... 오늘의 셰프가 누구냐고...

우리 남편이기를 바라는 눈치다... 

하긴, 내 성공 확률이 절반 정도로 떨어지면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나야 땡큐지 ㅎㅎㅎ 그렇다고 일부러 확률을 떨어뜨리는건 아니다. 재능이 없어진 것 같다 ^^

 

요즘 신용어인가? '사회적 거리'

여기서도 처음엔 100명이상 모임을 제한했으나 오늘 부터는 5인 이상으로 바꿨다.

오늘 두시 기준으로 확진자가 286명이 되었다. 아직 사망자는 1명이고...

데이터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는 있지만 일단 사망자가 1명이라는건 의료진이 모자라는 슬로베니아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창밖을 보면 정지 화면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말소리가 들려서 밖을 보니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또 약국 앞에서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줄 서 있다가 한명씩 내부로 들어간다.

여기도 대부분 사람들은 시키는 대로 잘 하고 있나 보다.
한국도 국민 모두가 당분간 시키는 대로 하면 좋을텐데 ... 정말 그런 찬란한 의료 시스템에서 아직도 확진자들이 나오는 뉴스를 보니 너무 안타깝다.
외국에서 살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정말 이번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단 키트랑 백신이랑 유럽에 수출 되고 소문 나면 다시 눈 마주치면서,
'왜? 나 한국사람인데? 할 말 있어?' 이럴거다 ^^

'사회적 거리' 유지^^

어제 저녁에 정말 깜짝 놀랄만한 일을 들었습니다.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그럴 줄 몰랐는데 역시 어디나 미친X들은 있나 봅니다.

 

16일 00시부터 버스, 철도, 항공기 중단되었고,
은행, 우체국, 약국, 식료품점들만 빼고 다 패쇄 된 상황입니다.
레스토랑 경우 직접 판매는 안되고 배달을 통해서 만 가능합니다. 테이크 아웃도 안돼요.

 

월요일 오후 쯤 한식당에 어떤 여자가 찾아와서 주문하는 걸
한국 교민 주인이 안된다고 배달로 주문하라고 하니까
난동 부리고 약간의 폭행도 있었나봐요.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고 하네요, 휴...

알아보니 그 주변 상점에 가서도 물건 못 판다고 하니까 그런 식으로 난동 부렸나 봅니다.

 

더 놀란건...

어쩐 미친X이 권총과 폭발물을 들고 코로나 감염자들 죽이겠다면서 시내 한복판을 활보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해서 잡아가긴 했다는데...

놀라서 그곳에 아시아 마켓하는 교민이랑 그 주변 아시아 식당들도 다 셔터 내리고 황급히 피신하고...

 

패쇄 첫날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슬로베니아 사람들도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 스럽겠지만 
여기 사람들도 이렇게 미칠 수 있구나 싶습니다.

 

제가 처음에 왔던 6년 전에는 벤치에 떨어뜨리고 간 지갑이나 핸드폰도 그대로 있었거든요...

그땐 동양인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흑인도 없었어요.

그러다 몇년 사이 급격하게 외국인이 많아지고 관광객도 급증하면서 많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집값도 많이 오르고,
전에는 신호등이나 사고가 아니면 자동차가 정지해있는 경우가 없었는데 요즘은 출퇴근 시간에 트래픽은 보편적이고 차가 막힐 때가 많아 졌습니다. 

관광객이 많아지니 집시 출현도 많아져서 소매치지 당하는 경우도 많아 졌습니다.

사실 여기에 사는 저도 당했었습니다 ㅋㅋ
친구랑 쇼핑백하나 들고 강변에서 수다 떨면서 걸어가는데 갑자기 핸드백이 가벼워진 것 같아 들여다보니 지갑을 쏙 빼갔더라구요. 참나 관광객도 아니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당했다는 사실이 어이없었네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나쁜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하나 봅니다.

어쩌면 여기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
그렇게 착했던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니 참 많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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