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겨울이 아직 지나가지 않은 것처럼 춥더니 어제부터 봄 날씨가 다시 찾아왔다.

꽃가루는 눈발처럼 날리고 베란다에 널어 놓은 빨래에는 그 꽃가루들이 제 집인양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난 한국에서는 알러지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작년 말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우리는 전원주택 같은 분위기의 류블랴나 외곽에서 4년 동안 살았다. 마당 앞에는 넓은 초원이 있는, 요양원 분위기의, 주위에는 온통 초록색인 주택.

가끔 한국에서 친한 벗들이 놀러 오면 2층 방 창문으로 그 초원에 노루가 뛰어다니는 것을 넋 놓고 보며 신기해 했다.

우리도 처음엔 벽난로에 불 앞에서 와인을 마시며 유럽의 긴긴 겨울이 로맨틱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넓은 잔디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석양을 감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원주택 로망은 그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예쁜 잔디는 그냥 얻어지는게 아니었다. 민달팽이들이 마당을 채웠고...(난 집 없는 민달팽이는 여기서 처음 봤다, 좀 많이 징그러운...) 두더지들은 여기저기 땅을 파 놨고, 잔디보다 토끼풀이 많아지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일이 모종삽으로 그 징그러운 민달팽이들을 집 앞 샛강 같은 곳으로 이주시켰고(어느날은 백마리도 넘게), 두더지들이 파놓은 땅은 다시 흙으로 덮고 다져야 했으며, 틈나는 대로 토끼풀이며 민들레는 뿌리까지 캐내 잔디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벽난로는 가을이 오기 전 장작을 주문해 마당에 쌓아 놓고 틈나는 대로 벽난로 앞에 다시 실어 날라야 했으며,

타고 남은 재는 틈틈이 갖다 버려야 했다.

 

로망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백조처럼 물 아래서 열심히 발을 움직여야 유지가 되었다.

그래... 그것도 인내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 로망의 집으로 이사간 다음 봄부터 나에게 알러지 증상이 찾아왔다. 아침에 일어나면 계속되는 재채기와 끊임없이 나오는 콧물, 가려워 미치겠는 눈...
유럽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봄이 오면 겪는 고통이었다. 병원가서 알러지약(태블릿, 코약, 눈약)을 처방받고 복용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친구와 티볼리 공원 근처에서 밥을 먹다 이러다 숨 못 쉬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심할 때도 있었다.

 

유럽의 꽃가루가 면역력을 자부했던 나를 이겼다...

최악이었던 작년 봄을 지내고 우리는 결정했다.
초록색이 아닌 회색 건물이 가득한 곳으로 이사 가자!!! 나무가 없는 삭막한 곳으로...

그래서 도심 가까이 아파트 촌으로 이사왔다. 아무리 아파트촌이여도 여기는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이 있고 주변에 나무들이 넘 많다. 특히 요즘은 봄철이라 이틀만 지나도 베란다에 노란색 가루들로 덮여있다.

그래도 요양원 집에 비하면 양반이다. 약만 놓치지 않고 먹으면 이제 재채기와 콧물 고생은 안한다.

우리는 덜 해진것 같은데 코코가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
아파트라 하루 세번 산책을 하다보니 코코가 자꾸 재채기를 한다... 강아지도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걸까???

 

보들보들한 연두색 잎들과 여기저기서 나는 꽃 향기가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봄날을 보내고 있다.

아파트 뒤 공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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